[제1장 게릴라 부대의 봉쇄와 격멸]06.이쉬카메쉬 지역 게릴라부대 봉쇄, 탐색 및 격파 by Zündschnur

06.이쉬카메쉬 지역 게릴라부대 봉쇄, 탐색 및 격파 by 소령 코비르쉰(A. M. Kovyrshin)

(코비르쉰 소령은 1982년 9월부터 1984년 11월까지 아프간에서 기계화 소총중대의 소대장으로 근무하였고 "붉은 군대 훈장"을 수상하였다.)

 적은 쿤두즈 시에서 남동쪽으로 60km 떨어진 이쉬카메쉬 마을 부근에 게릴라 기지와 훈련소를 설치하였다. 이 훈련소에서 훈련받은 게릴라 부대들이 쿤두즈 공항에 착륙하는 항공기를 공격하였고, 쿤두즈, 풀리, 쿰리를 연결하는 도로에서 보급호송대를 공격하였다. 이러한 적의 활동은 이 지방에 위치한 부대들의 지속적인 작전활동을 불가능하게 하였다.
 기계화 소총연대장(제 201 기계화 소총사단 예하 제149 기계화 소총연대)인 아키모프(V. A. Akimov) 중령은 이 지역에서 활동 중인 게릴라 부대를 격파하기 위해 전투를 준비하라는 준비명령을 수령하였다. 이 임무수행을 위해 연대에는 독립 수색대대와 독립 육군항동 대대 그리고 포병 2개 대대가 증강되었다. 추가로 아프간 보병사단(제20보병사단(아프가니스탄))이 연대를 지원하였다.

 1984년 1월 19일 연대와 예하부대들은 다음과 같은 전투 명령을 수령하였다.

 82mm 박격포 소대와 화염방사기 분대로 증강된 수색대대는 풀로리, 마르제크, 코카블락 지역으로 공중강습하여, 1월 20일 09:00시까지 이쉬카메쉬와 풀로리에 있는 적을 차단한다. 풀로리에 있는 적을 봉쇄하고 격파하기 위해서 제 2대대와 협조할 준비를 한다. 화염방사기 분대로 증강된 제 2기계화 소총대대는 쿠치, 받구자르, 아피쿠탄 지역으로 공중강습하여 이 지역에 있는 적을 격멸한다. 07:00시 이전에 대대의 기갑집단과 연결하고, 쿠치, 받구자르, 필카를 습격하여 필카와 일릭 사이에 있는 적을 공격하여, 그 지역에 있는 탄약창고를 포위한다. 이어서, 코카불락과 풀로리 마을에 있는 적을 격멸한다. 포병대대와 화염방사기 분대로 증강된 제 1기계화 소총대대는 행군으로 마르제크에 1월 20일 08:00시까지 도착하여 마르제크와 이쉬카메쉬 지역에 있는 적을 격멸하고, 이쉬카메쉬-다라이-파솨이 축선으로 진격할 준비를 한다.

 연대 예하부대와 수색대대의 병력수준은 70%, 장비 보급수준은 90%였다. 이 지역의 적은 1,100~1,300명의 무장한 게릴라로 약 70정의 유탄발사기, 25정의 DShK 12.7mm 중기관총, 박격포 40문, 10문의 야포를 보유하고 있었다. 정보에 의하면 이 지역에 무기와 탄약, 군 보급품이 저장되어 있는 7개의 무기고가 별도로 있다고 했다.

 1월 20일 동이 틀 무렵, 코카블락과 마르제크 지역 사이에 공중폭격을 한 후, 수색대대는 마르제크 동쪽에 공중강습을 실시하고, 제2기계화 소총대대는 쿠치 2km 북쪽에 공중강습을 실시하였다. 무자헤딘은 우리가 MI-6(수송헬기, 공중강습용 헬기가 아님)로 기동하는 동안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우리의 기만작전에 적이 속았던 것이다.
 티코노프(Tikhonov) 중령이 지휘하는 수색대대는 게릴라의 남쪽 철수로를 차단하였고, 코카블락과 마르제크 지역에 적을 포위하였다.
 
 블라소프(A. V. Vlasov) 소령이 지휘하는 1대대는 수색대대의 성공적인 기동에 힘입어 08:30분에 코카블락과 마르제크 마을에 도착하였고, 수색대대에 이어서 연결작전을 실시하였다. 이후 2 시간과 이어서 1시간 반 동안은 이 지역에 있는 적을 섬멸하였다.

 크로킨(V. Krokhin) 중령이 이끄는 2대대는 쿠치에 착륙하여 이 지역에 있는 적을 공격하였다. 08:30분에 6중대장 자리포프(Zarifov) 중위의 인솔로 서서히 접근하고 있던 기갑집단(bronegruppa)과 연결하였다. 2대대는 차량에 탑승해서 무기고를 파괴하라는 지시를 받고, 아피쿠탄과 받구자르를 연결하는 축선을 따라 습격을 개시하였다.

 적은 산악지역으로의 철수도 지연되고, 무자헤딘 훈련소가 있는 전략 요충지 이쉬카메쉬로의 철수도 어렵게 되었다.

 코카블락과 마르제크 지역의 적을 격파한 제 1기계화 소총대대는 남쪽에서부터 이쉬카메쉬로 기동하여 13:00시에 도착하였다. 이때, 아피쿠탄과 받구자르의 적을 격파한 2대대는 북쪽으로부터 이쉬카메쉬로 기동하였다. 무자헤딘은 이쉬카메쉬에서 양면포위를 당했던 것이다.

 제 3포병대대와 박격포 대대의 10분간 치열한 포병사격이 있은 후, 양개 기계화 소총대대는 헬기에 의한 공중엄호사격을 받으며 이쉬카메쉬로 공격하였다. 15:00시에 이쉬카메쉬가 함락되었다. 제 1보병대대는 다라이와 파솨이 방향으로 도주하는 소규모의 무자헤딘 부대를 추격하였다. 2대대는 수색대대와 연결하고 풀로리를 포위섬멸하기 위해서 풀로리 남쪽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16:00시경 적은 공격을 중지하고, 풀로리와 다라이, 파솨이 마을을 방어하는데 전력을 집중하였다.

 17:00시에 다라이와 파솨이 마을에 도착한 제 1대대는 장갑차(BMP)에 탑승한 채 마을을 공격하기가 여의치 않았다. 따라서 하차한 후 산쪽으로 기동하여 남쪽 측익을 따라 마을을 포위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포위부대에 의한 적의 화력집중으로 여의치 않았다. 대대는 이 마을을 차지하기 위해서 24시간을 더 소비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
 
 2대대도 장갑차(BMP)에 탑승한 채 풀로리를 공격하였다. 2대대 역시 장갑차 탑승공격이 여의치 않았고, 하차하여 남쪽으로부터 마을을 봉쇄하려고 시도하였다. 2대대와 수색대대는 이 마을을 점령하기 위해서 향후 24시간을 더 소비하였다. 마침내 마을을 점령하였으나, 대부분의 적은 안개와 야음을 틈타서 남동쪽 방향의 산악지역으로 도주하고 없었다.

 1월 20일과 21일 동안, 우리는 이쉬카메쉬 지역에 있는 적의 게릴라 본대와 적의 조직을 격파하였다. 적 사상자와 포로는 150여명에 달했고, 엄청난 양의 무기와 탄약을 노획하였다.

 프룬제 군사학교 강평: 이 절의 주목해야 할 점은 아래와 같다.
  • 적을 기만하였다(M i-8: 공중강습용 헬기 대신 M i-6: 수송용 헬기 이용)
  • 주력 작전이 집중되기로 계획된 지역으로 적을 유인하였다(아프간사단에 정보를 흘림으로서)
  • 다양한 기동의 형태와 수단을 활용하였다(측면공격, 포위, 수직포위, 다양한 수송수단의 이용, 때로는 도보기동도 활용).
  • 예하부대, 항공, 포병화력지원과의 치밀한 협조가 이루어졌다.(모든 중대에 포병관측장굘르 등반시키고, 편제된 전장항공통제관을 모든 대대에 지원하였으며, 추가적인 전방항공통제관은 예하중대에 작전 통제시켰다. 이들은 모두 적절한 통신수단을 휴대하였다.)
  • 부족한 병력으로 20X10km의 광정면 포위시도로 포위시기와 적을 섬멸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였다.
  • 수색부대를 전투부대로 활용하였다.
  • 모든 활동이 적을 포위하고 격파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도록 많은 주의를 기울였다.
 저자 강평: 신속하게 이루어진 공중착륙과 공중강습으로 인해 전술적 기습이 이루어졌다. 한번 적이 산악지역이나 녹색지대 또는 마을에 은거하게 되면, 적을 격파하기 위해서 수적으로 월등하게 우세하거나 강력한 화력을 가진 부대가 필요하다. 만약 이절에서의 기습이 알려졌다면 소련군은 분리된 양면에서의 공격을 하게 되는 것이고, 이에 따라 전투력이 부족하였을 것이다.
 공중강습에 Mi-6 수송헬기의 활용은 "동일한 유형을 반복하지 마라, 반드시 예상치 못하게 공격하라"라는 금언과 아주 꼭 맞는다. 꼭 꼬집어 얘기한다면, Mi-6수송헬기의 활용이 진정 적을 기만하기 위한 수단이었는지, 헬기 자산이 부족한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